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해 제국 (문단 편집) ==== 잉글랜드 정복 ==== 당시는 북유럽의 [[바이킹]]들이 한창 날뛰던 [[바이킹 시대]], 바이킹들은 전 유럽을 누비고 다니며 침략을 자행했다. 개중에는 [[덴마크]]의 왕 [[스벤 트베스케그]]도 있었는데, 스벤 트베스케그는 영국을 공격하던 중 1014년 2월 3일 사망하고야 말았다. 스벤 왕이 죽자 그 아들이 원정군 사령관직을 물려받았는데 이게 훗날 그 유명한 [[크누트 대왕]]이 되는 크누트 왕자였다. 당시 트렌트 강에서 함대를 지휘하던 크누트 대왕은 바이킹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사령관직을 물려받게 된다. 하지만 크누트는 사령관에 선출되자마자 눈물을 머금고 영국에서 철군할 수 밖에 없었다. 영국 귀족으로부터 착취당하던 농민들이 바이킹들에게 군마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정작 그 시점이 되니 아직까지도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영국 귀족들을 그새 [[애설레드 2세]]를 잽싸게 잉글랜드 왕으로 복위시키고[* 애설레드 2세는 무능함과 폭압적인 통치 때문에 이미 한 차례 쫒겨나 국외로 추방된 신세였다. 그러나 바이킹들이라는 최악의 재난이 찾아오자 어쩔 수 없이 전보다는 덜 가혹한 통치를 약속받고 다시 왕위에 올렸던 것.] 결집하기 시작했다. 이미 스벤 왕의 죽음으로 한 차례 큰 충격을 겪은 바이킹들이 대오를 정비한 영국 귀족들을 상대하기에는 무리였고, 결국 크누트와 바이킹 군대는 잉글랜드에서 물러났다. 한편 덴마크 본토에서는 크누트의 형제 [[하랄 2세]]가 새 왕으로 즉위했다. 크누트로써는 왕위도 없고 원정도 실패한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마침 노르웨이의 도움으로 어찌저찌 병력을 모아 잉글랜드로 재침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낸다. 크누트는 제 함대를 모아 1015년 여름에 다시 잉글랜드를 침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잉글랜드가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는데, [[애설레드 2세]]가 제 본성을 못버리고 다시 폭정을 펼치는 바람에 왕과 귀족들 사이에서 대대적인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 심지어 애설레드 2세의 아들들이 바이킹 쪽으로 투항했고 잉글랜드 왕국의 핵심이나 다름없는 [[웨식스]]가 크누트 쪽으로 넘어가버렸다. 이 와중에 정작 애설레드 2세는 1016년 4월 23일 죽어버렸고, 수도 [[런던]]의 시민들은 [[에드먼드 2세]]를 새 왕으로 추대했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 대다수의 귀족들이 크누트 쪽으로 투항했고, 크누트는 기세를 몰아 런던을 포위했다. 에드먼드 2세는 잠시 오트포드 전투에서 이기며 승기를 잡았으나 바로 연이은 아산둔 전투에서 대패했다. 기가 꺾여버린 에드먼드 2세는 크누트와 조약을 맺고 [[템스강]] 이북 잉글랜드는 모두 크누트에게, 그 이남 지방만 자신이 통치하는 걸로 합의했다. 그러나 에드먼드 2세가 얼마 못가 1016년 11월에 죽어버리면서 크누트가 잉글랜드의 유일한 국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잉글랜드의 유일한 군주가 된 크누트는 1017년에 옛 애설레드 2세의 왕비이자 과부였던 엠마와 재혼하며 영향력을 굳혔다. 그리고 자신에게 끝까지 저항했던 [[런던]] 시민들로부터 막대한 재화를 뜯어내 원정군들에게 나누어주면서 혹시나 바이킹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는 일이 없도록 확실히 막아버렸다. 더이상 잉글랜드에 크누트에 저항할 세력은 없었고, 크누트는 잉글랜드의 적법한 군주로 공인받는 데에도 성공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340px-Earldoms_of_Anglo-Saxon_England.svg.png|width=100%]]}}} || || '''{{{#40E0D0 북해 제국 시기 [[잉글랜드 왕국|{{{#40E0D0 잉글랜드 왕국}}}]]의 백작령 분포.}}}''' || 그후 크누트는 잉글랜드를 네개의 백작령(earldom)으로 나누었고[* 이때는 잉글랜드나 스칸디나비아나 대륙식 공작 작위가 없었으며, 백작에 대응되는 야를이 가장 높은 작위였기에 왠만한 백작들은 공작급으로 위세가 컸다. 야를이 백작급으로 격하된건 잉글랜드와 북유럽에 공작 작위가 만들어진 이후이다. ], 웨식스 지방은 본인이 직접, 동앵글리아[* 옛 동앵글리아 강역에 에식스와 미들섹스 강역을 합쳤기에 실제론 굉장히 컸다. ] 야를에 [[빈란드 사가]]에 등장한 걸로도 유명한 토르켈을 앉혔고, 노섬브리아에는 노섬브리아 바이킹 왕조의 마지막 왕인 에릭 하콘손을 다시 복귀시켰다. 머시아는 기존 백작이였던 에아드릭 스트레오나를 그대로 인정했으나, 얼마 안가 토사구팽시켰다. 1018년에는 다시 두개의 백작령을 분할했고, 스코틀랜드에 영향력을 뻗기 위해 원정을 시도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